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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야 할지 고민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. “이른 은퇴, 몸이 프로선수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다”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조재진 총감독(사진=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) 2011년 3월 18일 29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. 전북 현대에서 2008시즌을 치른 뒤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했습니다. 감바가 전북에 큰 이적료(15억 원)를 제시했어요. 5배가 넘는 연봉도 제안했죠. 하지만, 2년 동안 제대로 뛰질 못 했습니다. 몸이



향했습니다. J리그 여러 구단에서 연락을 받았어요. 개인적으론 시미즈로 돌아가고 싶었죠. 하지만, 팀이 재정난으로 큰돈을 쓸 수 없었어요. 그러다가 최강희 감독께 전화를 받았죠. ‘K리그에서 뛸 마음이 있느냐’고 물어보셨어요. 감독님이 신뢰를 보내주신 덕분에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. 2008년 전북 유니폼을 입고 리그 31경기에 출전해 10골 3도움을 기록했습니다. 전북에서의 시작은 불안했어요. 뉴캐슬 이적 실패 후 방황한 시간이 있었죠. 홀로 여행하며 머릿속을 정리한 까닭에 시즌 준비가 늦었습니다. 하지만, 감독께서





훈련장에 와서 맨 마지막에 떠나는 거죠. 이 선수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배우고 느끼는 게 많았어요. 전성기에 찾아온 뉴캐슬(EPL) 입단 기회, 부상에 꿈을 이루지 못하다 '조재진 축구교실' 조재진 총감독(사진=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) ‘2004 아테네 올림픽’과 ‘2006 독일 월드컵’에서 경쟁력을 증명했습니다. J리그에선 최정상급 공격수로 발돋움했죠. 2008년 1월 겨울 이적 시장에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눈앞에 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. 기성용이 뛰고





황새(리틀 황선홍)’란 별명에서 수 있듯 조재진은 한국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선수였습니다. 인생의 동반자인 축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. 경기도 파주가 고향입니다. 집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오락실을 빼면 친구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낼 공간이 없었어요. 축구공이 최고의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죠(웃음). 아버지께서 ‘친구들하고 뛰어놀아’라고 하시면서 축구공을 선물해 주신 게 축구와의 첫 만남입니다. 친구들과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은 환경이 조재진을 축구의 길로





갖추면서 스트라이커로 변신했습니다. 축구계엔 ‘우월한 신체조건이 필수이냐 아니냐’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. 대표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. 특정 포지션에선 신체조건이 좋은 게 유리하다고 봅니다. 골키퍼, 중앙 수비수, 스트라이커가 그 예죠. 키 큰 골키퍼는 큰 키를 공중볼을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데 아주 유리해요. 건장한 체격의 중앙 수비수는 상대와의 몸싸움과 세트피스 수비에 강점이 있죠. 스트라이커 역시 전술의 다양성을 더할 수 있습니다.



일본에서 뛸 때 취미로 골프를 쳤어요. 그때 알게 된 선배랑 우연찮게 마음이 맞아서 골프사업을 했죠. “나는 뼛속까지 축구인. 죽을 때까지 축구계에 종사할 것” 평생을 축구와 함께 하고 싶다는 '조재진 축구교실' 조재진 총감독(사진=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) 2018년부턴 축구교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. 우리 아이들 또래라서 재밌습니다(웃음). 큰 아이가 이제 8살이에요. 남자아이라서 축구를 아주 좋아합니다. ‘아빠처럼 축구 선수되는 게 꿈’이라고 하죠. 작은 아이는 6살 공주님이고요. 아이들이 공 가지고 놀면서 땀 흘리는 걸 보면 뿌듯합니다.





전방에 체격 좋은 선수가 있으면 상대 수비의 부담이 커요. 우리팀 동료를 활용하는 데 유리하고요.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력을 보강한 뒤부터 전성기가 시작된 겁니까. 학창 시절엔 축구를 특출 나게 잘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. 전국대회에 나가면 나보다 잘하는 선수가 차고 넘쳤죠. 말 그대로 운동만 했습니다. 팀원들은 주중 합숙을 마치고 주말엔 무조건 집에 가서 휴식을 취했어요. 나는 집에 안





있는 것과 없는 건 크게 다르거든요. 또 어릴 적부터 국가대표 선수를 많이 봤습니다. 학부모님께 현실적인 평가와 조언을 많이 하죠. 축구교실 운영을 지도자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봐도 됩니까. 지금은 아니에요.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립니다. 내 꿈을 이루자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소홀하고 싶지 않아요.



있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몸담을 뻔했죠. 내 이름이 적힌 유니폼이 나온 상태였어요.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겁니까. 20대 초부터 고관절이 안 좋았어요. 약 챙겨 먹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날이 많았죠. 사실 어느 팀으로 이적하든 메디컬 테스트에서 안 걸린 적이 없어요. 안 걸린 적이 없다? 시미즈 S펄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. 하지만, J리그는 맨 마지막에 선수 의사를 물어봤어요. ‘메디컬 테스트 결과에 문제가 있는데 네 생각은 어떤지’를 확인한 후 영입을 결정했죠. J리그로 건너가 문제없이 뛸 수



하지만, 지도자의 꿈은 항상 있습니다. 어떤 지도자를 꿈꿉니까. ‘축구가 재밌다’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지도자. 선수를 꿈꾼다고 해서 누구나 손흥민이 되는 건 아닙니다. 다만 축구를 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. 축구선수를 꿈꾼다면 후회 없이 땀 흘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. 나는 선수가 계획대로 나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지도자를 꿈꿉니다. 국가대표나 K리그 경기도 많이 챙겨봅니까. 축구인 중에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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